예술과 프로노의 경계는 어디인가?

얀 샤우덱(1)

 

 얼마 전, 얀샤우덱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국내 포털을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얀 샤우덱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어 정리하는 포스팅을 하려 합니다.

 발가 벚은 여인이 있습니다. 풍만한 유방이 있고, 무성한 털로 뒤덮힌 두터운 음부가 있고, 두툼하게 부풀어 오른 엉덩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술일까요? 아니면 저급한 프로노일까요? 한 유머 사이트에서 이 문제에 대해 서술한 재밌는 의견을 보았습니다. 본 사람이 소위 '꼴리면' 프로노고, '꼴리지 않으면' 예술이라는 것이지요. 재밌으면서도 일견 수긍이 가는 말 입니다.


아무리 육감적인 그림도 '미의 신'을 표현한 예술입니다


 예술과 외설의 관계는 늘 모호한 것이었다. 미술이 일부 귀족들의 소유물이었을 때부터 그둘의 눈울 즐겁게 하기 위해서 육체가 아름다운 젊은 여성을 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대신 그 그림이 외설로 평가받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여성의 육체를 그리스 신화와 역사로 포장했지요. 화가들이 애무리 야한 그림을 그리더라도 그것은 언제까지나 그림이며 실제의 대상이 아니기에 이것은 프로노가 아니라는 최후의 변론이 가능했습니다.


이게 예술이라고? 당시 사람들의 충격이 느껴 지시나요?


 그러나 얀 샤우덱이 예술의 정의에 대해 질뮨을 던졌을 때, 그의 작품들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닌 실제였습니다. 누군가는 그 사진을 찍을 때 분명히 벗었으며, 그 사진을 보는 대상들도 더 이상 자신들이 예술품을 보고 있다기보다는 프로노를 보고 있다고 느꼈을 껍니다. 그렇기때문에 얀 사우덱의 작품들은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지요. "옷을 입는 사람을 찍는 것은 섬유 껍질로 둘러쌓인 나무를 찍는 것과 같다."라고요. 



 이런 그의 작품 세계는 일반인들에게 이해받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가 작품 활동을 시작할 때의 체코는 공산 국가였고, 비밀 경찰들이 곳곳을 돌아다닐 때 였지요. 그는 지하의 비밀의 방을 만들어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몽환적인 배경에 주로 여성의 세미 누드나 누드를 넣어 작품을 만들고, 이는 결국 세계의 주목을 끌게 됩니다. 



그는 모델을 쓸 때 굳이 육감적이고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모델을 쓰진 않았습니다. "어떠한 인간의 모습도 아름답다." 이런 그의 말을 입증하듯이, 그는 사람의 본연의 모습을 표현하려 했었습니다. 그런 그의 작품은 이제 하나의 세계가 되어, 사람들에게 예술과 외설의 관계를 다시 생각 해 보게 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얀 샤우덱의 작품들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시간의 잡동사니의 문화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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