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의 관념을 깨부수다

후쿠다 미란

 

1963년대 출생해 20세기 일본회화를 주도하고 있는 후쿠다 미란은 다양한 미디어와 복제를 통해 아우라가 없는 작품이 범람하는 현대 미술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작가입니다. 또한 서양화의 기본적인 관념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 무너뜨리는 창의적인 그림들도 인상적이지요. 아래의 작품을 보세요.

 

<Portrait> (1997)

 이 기괴한 형태의 초상화는 실제로 전시회장 구석에, 양 면의 벽을 차지하며 설치되어 있습니다. 사실 초상화 자체는 그리 특이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서양 화풍의 초상화인데요, 특별한 점은 바로 이 초상화의 액자와 초상화 자체가 뒤틀어져 있는 것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그림은 이차원의 그림이 뒤틀어지며 삼차원의 이미지를 이루려 하고 있습니다. 이차원인 캔버스에 삼차원을 담는다는 생각은 피카소 이래로 계속된 도전과제였습니다. 피카소는 다른 시각을 연결하여서, 혹자는 캔버스를 칼로 그음으로써 삼차원을 창조하려 했는데요, 후쿠다 미란은 아예 캔버스를 접어서 삼차원을 창조한 것입니다. 정말 독창적인 생각이라고 느껴집니다.

혹은 삼차원을 창조하려고 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일종의 초상화는 이래야 한다는 관념에 도전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는 저번에 보셨을 나오후미의 작품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네요.

후쿠다 미란의 다른 작품으로는 다음 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Green Giant>(1989)

  가운데 그림이 익숙하지 않으세요? 바로 밀레의 작품인데요, 이를 현대의 대표적인 옥수수 통조림인 그린 자이언트를 꼴라쥬했네요. 점 점 커지는 그린 자이언트, 그리고 가운데서 조그만 공간만을 차지하고 있는 부부는 과거와는 달리 소비만 존재하는 현대사회를 풍자하는 듯 합니다. 또한 복제를 통해 작품을 만드는 현대 미술에 대한 질문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기 예수가 본 성모와 성 안나>(1992)

  이 작품역시 후쿠다 미란의 작품인데요, 아주 독특한 구도와 특이한 표현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존 서양화의 성화들은 모두 예수가 주인공입니다. 따라서 어느 구도를 취하던지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예수를 위치시키기 마련 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분명 성화이지만 예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왜냐? 내 시선이 예수의 시선과 일치하기 때문이죠. 나와 예수의 시선이 일치하기 때문에 나는 예수를 볼 수 없습니다. 예수의 입장에서 어머니와 친척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지요. , 이 그림은 감상자가 있어야 완성되는 그림인 것입니다.

후쿠다 미란은 이렇듯 창의적인 시도들로 기존의 서양화의 관념을 부수거나, 콜라쥬를 통해 현대 소비사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이 인상적이 신가요? 아쉽게도 그녀의 작품을 소개하는 블로그나 사이트가 없네요. 더 많은 작품을 보고 싶으시다면 구글에서 福田美蘭으로 구글링 하시는 것을 추천 드릴께요.

모호한 경계속에 펼쳐지는 그림,

마루야마 나오후미

 

1964년이자 무사시노 미술대의 교수인 마루야마 나오후미는 유기적인 형태의 추상화를 그리던 초기 작품에서 밝은 톤의 그림을 그리는 요즘의 작품까지, 모두 매력적입니다.

이 작가의 특징은 ‘선’이 모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이 존재하지 않고 흐릿한 상의 색의 변화가 그림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선은 사물과 배경, 사물과 사물을 구분시켜주는 요소지요. 사실 선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요.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감상하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선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나오후미의 작품은 안개가 낀 듯 흐릿하기만 합니다.

안개가 끼면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답답하고 갑갑하기 마련이지요. 한편으론 신비스럽기도 합니다. 나오후미의 그림은 이런 안개의 특성과도 같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무제(1995)

위 두 그림은 매우 인상적인 그녀의 인물화입니다. 인물화를 저렇게 뿌옇게 안개가 낀 듯한 그림으로도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 이였습니다. 기존의 반듯한 선으로 인물의 특징을 강조하던 그림과는 다르게, 밤안개가 내려앉은 짙은 보랏빛 호수 같은 이런 모호한 인물화도 인상적이더군요. 사실 인물화를 이렇게 그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인물화는 대상이 되는 인물의 특징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뿌연 그림을 그리기 쉽지 않지요. 마치 흐린 인물화를 통해 인물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듯 하네요.

이 작가는 캔버스에 두 번 이상 붓질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번의 붓질을 통해 긴장된 구성을 이룬다고 하네요. 물론, 심미적인 아름다움도 포기하지 않고 말이죠. 그의 작품은 그가 고른 모티프를 생생히 전달하고, 스타일은 정적이라기보다는 동적이랍니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추상과 표현하려는 물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그의 의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들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Path 3(2005)                          Day and Night(2005)

       

Butterfly Song(2005)                Puddle in the Wood 4(2010)

우리나라 웹에는 잘 나오지 않고 丸山直文라고 구글링을 해야 비로소 나오더군요.

그의 작품들은 모두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몽환적인 느낌을 주며, 동양화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동양화 특유의 여유와 느낌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세계를 함께 즐겨보시죠.

나오후미의 블로그: http://petapetahirahira.blog50.fc2.com/blog-entry-423.html


http://www.mangost.gr.jp/kobayashi/

코바야시 타카노부의 공식 사이트

http://www.nishimura-gallery.com/artists/kobayashi/kobayashi.html 

코바야시 타카노부의 여러 작품들

http://kobabkk.exblog.jp/

코바야시 타카노부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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