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사자
조커
배트맨 역사상 가장 인기가 있었던 악당은 다름아닌 조커입니다. 기괴한 화장(일부 설정에 따르면 화장이 아닌 화학약품 때문이긴 합니다만), 넘처흐르는 광기에 매료되지 않은 배트맨의 팬은 없겠지요.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에서는 히스레저가 조커 역할을 맡았는데요, 아쉽게도 영화가 촬영이 끝난 뒤 약물 중독으로 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전작에서 조커역할을 맡았던 잭 니콜슨은 "난 경고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네요. 그 정도로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캐릭터 조커는 확실히 놀란의 배트맨에서 새로 태어났습니다.
"골치아픈 놈이 있어...늘 카드를 남기지."
코믹스의 조커가 탄생배경이 확실히 존재하는데 비해, 놀란의 조커는 정체불명의 악당입니다. 극의 초반에서 끝까지 화장이 벗겨지지 않으며, 경찰에 잡혀서도 DNA, 치아 등 모든 것의 데이터가 나오지 않고 심지어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의 과거도 일정하지 않지요. 자신의 입을 찢어진 것만이 일정할 뿐 나머지는 모두 때에 따라 바뀝니다. 사람을 구성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과거입니다. 과거를 통해 '나'가 생겨나는 것이지요.
"내가 이 상처를 어디서 얻었는지 아나?"
그런 의미에서 조커는 '자기 자신'이 없습니다. 자신의 욕망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그는 그의 대사처럼 그저 차를 쫒아 가는 미친 개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사회를 얽매는 규약이나 규칙이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하고 싶기에 하기'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DC 최고의 명탐정인 배트맨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없었을 수 밖에 없지요.
"날 죽이지 않는 것들은 날 강하게 만들지."
배트맨이 등장하기 전까지, 조커는 단지 광대에 불과했습니다. 단지 마피아의 돈을 훔치거나, 작은 사고들을 치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나가는 조무래기 악당에 불과했지요. 그러나 배트맨이 등장하고, 공포로 고담시의 마피아들을 처단해 나가는 것을 본 그는 서서히 배트맨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마스크를 쓴 채로 악을 축출하지만, 결코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 배트맨에게 그는 매료됩니다.
"저들에게 너는 괴물이야, 마치 나와 같은..."
조커가 배트맨에게 매료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석의 양극이 서로 끌어당기듯이 그와 배트맨은 양극에 위치한 '질서'와 '혼돈'이기 때문이죠. 배트맨이 존재하기 때문에 조커가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커의 말대로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사실 조커의 범죄행위들은 배트맨에 대한 구애행위와도 같습니다. 배트맨은 그렇기 때문에 조커를 이해할 수가 없지요. 돈을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뚜렷한 목표가 있어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배트맨을 자극하고, 판을 키우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지요.
"돈과는 상관 없어,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지."
하지만 이렇게 배트맨을 갈망하는 동시에, 그는 배트맨을 붕괴시키기를 원합니다. 그가 믿고 있는 것들을 붕괴시키길 원합니다.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정 반대인 배트맨을 정신적으로 파괴하려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하비덴트를 타락시키고, 탈출선들을 훔쳐 그의 게임이론과도 비슷한 '사회확 실험'을 합니다. 그가 지키려는 고담의 사람들의 가치가 없음을 배트맨에게 가르쳐 주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기대를 배신합니다. 이 모든 조커의 범행들은 단지 배트맨과 놀려는 조커의 어리광에 불과하지요. 영화에서 조커가 총을 쏠 때는 사람을 거의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칼로 찌를 때는 상대의 표정을 끝까지 주의 깊게 살펴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아무렇게 생각하지도 않지만, 사람이 죽을 때 짓는 표정은 꼭 보고 싶다는 것이지요. 조커에게 살인은 하나의 오락일 뿐입니다.
결국 그는 배트맨의 정신을 붕괴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배트맨은 조커와의 투쟁 이후에 사랑하는 연인과, 경애하는 친구와 그가 지키는 도시의 신뢰를 잃고 폐인이 되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8년 동안이나 잠적하지요. 그 동안 조커가 블랙게이트 수용소를 탈출하지 않은 것은 물론 히스레저가 유명을 달리한 것도 있겠지만, 놀란의 세계 속 배트맨에서는 자신의 숙적이 잠적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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