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안에 있는 여성성과 남성성 그리고 부부역할

더 레이디, 남편의 외조와 여성



 영화 '더 레이디'는 아웅산 수 치 여사(양자경분)의 일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가족과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감내하면서까지 자신의 조국인 버마(미얀마는 군부가 개칭한 명칭이기에 버마로 칭합니다.)를 택하는 과정은 눈물없이 보기 힘들었지요. 그러나 그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희생을 한 것은 버마에 갇혀있는 아내를 외조한 마이클 에어리스(데이빗 튤리스 분)일지도 모릅니다. 국제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내를 다방면으로 외조해 아내에게 노벨상을 안겨주고, 아이들을 기르며 본직에도 충실한 그의 모습은 마치 성자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에 '씨네 21'의 한 리뷰에서는 영화의 제목을 '더 허즈밴드'로 해야한다고 했지요.

 이런 '더 레이디'의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보고 있자면, 최근 우리사회에서의 부부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랫동안 남편은 사회생활을 하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며 육아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양성평등의 시대가 열리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최근 남편의 '외조'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정치인인 나경원씨, 이정희씨나 연예계의 다양한 기혼 스타들이 자신의 성공의 큰 요인으로 남편의 헌신적인 외조를 꼽기도 했는데요. SBS뉴스에서는 직장 없이 가사를 전담하는 남편은 5년 사이에 42%나 늘어나 15만 명을 넘어섰습니다고 하며, 직장을 다니며서 가사를 맡는 남편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남편의 강한 외조는, 직장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합니다. 이를 보며 곱지 못한 시선을 보내는 남성들이 많지만, 그래도 아내가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것을 응원해 주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 부부 아닐까요? 물론, 같이 사회활동을 할 때 지나치게 남편에게 가사를 요구하는 것은 부부싸움을 유발할 수도 있겠지요.

 아웅산 수 치여사에게 마이클 에어리스라는 남편이 없었다면, 모국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을까요? 아웅산 수치는 국가에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려 애썼지만, 이도 어찌보면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한 사회활동을 한 것이니까요. 기존의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인식으로 정해진 부부의 역할을, 새로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시간의 잡동사니의 문화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모성의 결핍이 만들어낸 괴물

피에타, 이강도는 왜 괴물이 되었나?

시설증후군



 <피에타> 나오는 이강도(이정진분)는 잔인하고, 잔악합니다. 돈을 받기 위해서 사람들을 협박하는 것은 기본이고, 기한이 다 되면 남을 병신 만들어서 보험금을 받아 가지요. 거기다 장어, 토끼, 닭 등 여러 동물들을 산 채로 가져가 잡아 먹는 것은 동물적인 그의 삶을 더 강렬하게 느끼게 됩니다. 도대체 무엇이 강도를 이런 괴물로 만든 것일까요?

 강도가 어머니(조민수분)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며 모성을 갈구하는 것을 볼 때, 그를 괴물로 만든 것 중 하나는 바로 모성의 결핍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어렸을 때 모성의 결핍으로 인해 반사회적 경향등 부정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을 시설증후군 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시설에서 자랐을 경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말해서 시설증후군이었지만, 갈수록 의미가 넓어져 지금은 모성의 결핍 대부분을 시설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많은 연구결과는 아동기간의 어머니의 부재가 심각한 정서의 결핍을 가져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이런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부모님이 없는 아이들이라 해도 고아원으로 보내기 보다는 수양부모에게 일정기간 길러지게 한다고 합니다.

 

 이런 시설증후군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렸을 때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커서는 장기간의 심리치료를 통해 어느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는 어머니들의 마음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나요? 오늘 하루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한다고 말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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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 기억에 남는이유

그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와

무드셀라 증후군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건축학 개론>같은 첫 사랑을 다룬 영화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첫 사랑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들의 공통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주인공은 이쁘고 잘생겼다; 사실, 우리들의 첫사랑이였던 소년 소녀가 꼭 잘생기고 이쁘지 만은 않치요,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은 정말 이쁘고 남주인공들은 잘생겼지요. 물론, 영화니 외모가 출중한 배우를 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외모가 출중할 수록 더 공감을 하게 되지요.

2. 첫사랑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이뤄지지 않은 사랑이 더 아름다운 법 아니겠습니까? 그래서인지 영화의 첫사랑들은 정말 안타깝게 이뤄지지 않지요.



 이런 것들은 '무드셀라 증후군'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가장 강렬한 감정 중 하나인 사랑, 하지만 첫사랑은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까지 없었을 강렬한 감정의 불꽃이 꺼졌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지요. '무드셀라 증후군'은 이렇게 강렬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상황을 빨리 잊고,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첫사랑을 '좋은 추억'으로 미화시키게 됩니다. 

 특히 이런 증후군은 남성에게서 더 많이 발견되는데, 상처를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털어놓고 극복하는 여성들과는 달리 남성은 상처를 속으로 삭혀서 극복하기 때문입니다. 남자친구나 남편이 말하는 '완벽한 첫 사랑'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저런 사람이 어디있어? 라는 생각을 하셨을 텐데, 정답입니다. '완벽한 첫 사랑'은 남자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생물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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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없이 살지 말자

트루먼쇼와 애쉬효과



 <트루먼쇼>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거대한 스튜디오 안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실시간으로 방영하는 프로'라는 창의적인 착상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트루먼 버뱅크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계속해서 거짓된 인생을 살아오지요.

 하지만 이 스튜디오가 인간이 만든 것인 이상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고 군데 군데 구멍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트루먼을 둘러싼 모든 사람은 그런 것들을 완전히 무시하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지요. 결국 수상한 점들을 너무 많이 봐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이상함을 깨달게 됩니다. 하지만, 그 전 까지도 말도 안되는 수 많은 것들을 보면서도 왜 트루먼은 이상함을 깨달지 못했을까요?



 바로 주변인들이 그것을 문제삼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요? 1950년대 초에 이런 실험이 있었습니다. 위의 그림을 보여 준 뒤 A, B, C 중 어느 선이 왼쪽의 선의 길이와 같냐고 물어봤습니다. 물론 C아니냐고요? 당신 주위에 모든 사람이 A나 B를 택한다면 어떨 것 같나요? 실제 실험 결과 단 1/4만의 사람이 정답인 C를 택했습니다. 자신의 눈보다, 대중의 판단에 이끌린 것이지요. 이 실험에서 사람들이 자신보다 대중에 판단을 따른다는 애쉬효과가 생겨났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렇기에 사회의 판단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대중에 판단에 이끌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이지요. 하지만, 위의 경우처럼 명백히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에도 그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라간다면 문제가 되겠지요. SNS에서 퍼지는 수많은 사건들을 남들이 보는 대로, 믿는 대로 판단해 마녀사냥이 일어나는 요즈음, 늘 깨어서 생활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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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나와, 세상이 보는 나

리플리와 공상 허언증


 어느 30대 주부는 처녀 시절 구직자리를 알아보던 도중 국가정보원에서 속기 공무원을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 뒤 자신이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한 그녀는 그 거짓말을 가리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하고, 더욱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되었지요. 그녀는 평소에도 공무원처럼 행동하고 다녔으며, 사치스런 생활로 많은 돈을 꾸고도, '국정원 비밀요원이라 자세한 사항은 말할 수 없다', '기밀을 말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의심하는 사람의 입을 막았습니다. 결국, 사기가 드러나 경찰에 끌려갈 때 까지 자신이 국정원의 직원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어떠한 끔찍한 일을 저질러도, 다 합리화 하게 되어있어."

 이렇게 자신의 거짓말을 현실로 믿고 사는 것을 '리플리 증후군' 혹은 '공상 허언증'이라고 합니다.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영화 <리플리>이지요. <리플리>의 주인공, 리플리는 호텔보이에 지나지 않았으나, 우연히 입게된 프린스턴의 자켓에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보고 서서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결국 자신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던 친구를 죽이고, 자신이 그 친구가 되었다고 믿고 살게 되지요. 맷 데이먼의 표정연기가 일품이니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공상허언증은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이상은 높은데 도달하기 힘들자 스스로를 완벽히 속인 것입니다. 이들의 거짓말은 거짓말 탐지기에서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네요. 초창기에는 거짓말이기 때문에 논리적인 모순이 생기지만, 나중에 심각해지면 자신 내에서 세계가 완결되기 때문에 논리적 허점도 거의 없어진 다고 합니다. 

 아무리 내가 그리는 나와 현실의 나의 간극이 있다고 해도, 현재의 나에 만족하고 보듬어 준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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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완벽하게 만들어

조커와 드 클레랑보 신드롬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기억나시나요? 극 중 내내 행동원리가 전혀 없어 보이는 조커의 단 하나의 행동원칙은 '배트맨'을 쫓는 것이지요. 배트맨에게 '너 없이 내가 뭘 하겠어?'라고 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배트맨의 원칙을 깨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 '저들에게 너는 괴물이야, 나와 같은.' 이라며 배트맨 역시 자신과 동류임을 확신하지요. 배트맨이라는 대상이 자신에게 집착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사회적 명망, 권력, 재산이 있는 남성이 자신과 사랑에 빠졌으며, 심지어는 그들이 먼저 자신을 사랑했다고 믿는 드 클레랑보 신드롬의 일종입니다. 언뜻 보면 스토킹과 비슷하지만 스토킹이 자신의 애정의 대상의 의견에 관계없이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낸다면, 드 클레랑보 신드롬은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
다는 것이 차이입니다. 심지어, 상대가 돌아봐 주지 않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은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드 클레랑보 신드롬의 희생자, 조지 5세


 드 클레랑보 박사는 이 신드롬을 한 환자의 사례에서 발견 했습니다. 이 환자는 53세의 프랑스 여성으로, 영국왕 조지 5세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심지어 궁전 창문의 커튼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것을 왕이 보낸 신호로 해석했지요. 그녀는 그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모든 영국인들이 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호텔 예약을 하지 못했고 런던 현지에서 숙소를 잡을 수가 없었는데, 그 모든 것이 왕의 방해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왕의 초상화와 돈이 담긴 자신의 가방을 잃어버린 것도 그의 짓이라는 등 근거 없는 주장을 일삼았지요. 아래는 그녀가 한 말입니다.

"왕이 나를 미워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절대 잊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는 결코 그에게 무관심할 수가 없으며 그도 나에게 그러합니다. 그가 내 마음에 상처를 주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나는 마음 깊숙이 그에게 매혹당했습니다. 내 사랑은 비록 미쳤을지 모르나, 내 이성은 어서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로 가서 사랑을 쟁취하라고 속삭입니다..."


 <다크나이트>의 조커도 이런 심리는 아니었을까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추구하는 가치관을 고담에 구현하려는 배트맨의 모습에서 화장을 하고, 고담에 혼란을 가져오려는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커는 배트맨과 싸우다 건물에서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배트맨의 원칙이 깨졌다는 생각에 웃음을 짖고, 또 다른 이가 배트맨의 존재를 밝히려 하였을 때 그를 죽이려 했지요. 조커는 아마 드 클레랑보 신드롬에 빠져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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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생명체의 생존 본능

가르시아 효과

 


 한 생쥐가 있습니다. 생쥐의 눈 앞에는 맛 있어 보이는 치즈가 있지요. 생쥐는 재빠르게 치즈의 곁으로 달려가 덥석  물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행복감에 젖어 잠시 누워있었지요. 그런데 연구원이 다가오더니 생쥐에게 전기 충격을 가했습니다. 생쥐는 아파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날, 생쥐의 눈 앞에 어제의 그 치즈가 나타 났습니다. 생쥐는 과연 이 치즈를 먹을까요?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이렇게 먹는 행동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정한 인과관계를 학습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르시아 효과'라고 합니다. 실험에서는 전기 충격을 가했지만, 현실에서는 구토나 질병 등을 느끼면, 그 먹거리를 먹지 않게 된다는 것이지요.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 말이에요. 

 사실 파블로프의 개의 실험으로 유명한 고전적 조건화에서는 몇 번의 경험이 있어야 조건화가 일어납니다. 파블로프도 몇 번이고 먹이를 줄 때 벨을 흔들었지요. 하지만 가르시아 효과는 생존 본능으로 인해 단 한 번만의 경험으로도 조건화가 일어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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