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인가? 조각인가?

데이비드 올리베이라





 데이비드 올리베이라는 포르투갈의 촉망받는 조각가입니다. 32세의 나이로, 이미 수많은 상을 수상한 그는 현재 포르투살, 스페인, 미국 그리고 터키에서 예술 프로젝트를 맡고 있습니다. 

 


 그의 조각들은 매우 독특합니다. 거친 스케치, 크로치와도 같은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지금까지의 조각이 삼차원을 어떻게 구현하냐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그는 삼차원에 이차원의 스케치를 그려 냈습니다. 마치 공중에다가 그린 듯한 그의 조각들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조각의 정의에 대해 도전을 하는 것만 같은 그의 스케치 조각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창의성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됩니다. 더 많은 작품을 보고 싶으시면, 그의 블로그에 들어보시죠.


그의 블로그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시간의 잡동사니의 문화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예술과 프로노의 경계는 어디인가?

얀 샤우덱(1)

 

 얼마 전, 얀샤우덱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국내 포털을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얀 샤우덱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어 정리하는 포스팅을 하려 합니다.

 발가 벚은 여인이 있습니다. 풍만한 유방이 있고, 무성한 털로 뒤덮힌 두터운 음부가 있고, 두툼하게 부풀어 오른 엉덩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술일까요? 아니면 저급한 프로노일까요? 한 유머 사이트에서 이 문제에 대해 서술한 재밌는 의견을 보았습니다. 본 사람이 소위 '꼴리면' 프로노고, '꼴리지 않으면' 예술이라는 것이지요. 재밌으면서도 일견 수긍이 가는 말 입니다.


아무리 육감적인 그림도 '미의 신'을 표현한 예술입니다


 예술과 외설의 관계는 늘 모호한 것이었다. 미술이 일부 귀족들의 소유물이었을 때부터 그둘의 눈울 즐겁게 하기 위해서 육체가 아름다운 젊은 여성을 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대신 그 그림이 외설로 평가받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여성의 육체를 그리스 신화와 역사로 포장했지요. 화가들이 애무리 야한 그림을 그리더라도 그것은 언제까지나 그림이며 실제의 대상이 아니기에 이것은 프로노가 아니라는 최후의 변론이 가능했습니다.


이게 예술이라고? 당시 사람들의 충격이 느껴 지시나요?


 그러나 얀 샤우덱이 예술의 정의에 대해 질뮨을 던졌을 때, 그의 작품들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닌 실제였습니다. 누군가는 그 사진을 찍을 때 분명히 벗었으며, 그 사진을 보는 대상들도 더 이상 자신들이 예술품을 보고 있다기보다는 프로노를 보고 있다고 느꼈을 껍니다. 그렇기때문에 얀 사우덱의 작품들은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지요. "옷을 입는 사람을 찍는 것은 섬유 껍질로 둘러쌓인 나무를 찍는 것과 같다."라고요. 



 이런 그의 작품 세계는 일반인들에게 이해받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가 작품 활동을 시작할 때의 체코는 공산 국가였고, 비밀 경찰들이 곳곳을 돌아다닐 때 였지요. 그는 지하의 비밀의 방을 만들어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몽환적인 배경에 주로 여성의 세미 누드나 누드를 넣어 작품을 만들고, 이는 결국 세계의 주목을 끌게 됩니다. 



그는 모델을 쓸 때 굳이 육감적이고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모델을 쓰진 않았습니다. "어떠한 인간의 모습도 아름답다." 이런 그의 말을 입증하듯이, 그는 사람의 본연의 모습을 표현하려 했었습니다. 그런 그의 작품은 이제 하나의 세계가 되어, 사람들에게 예술과 외설의 관계를 다시 생각 해 보게 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얀 샤우덱의 작품들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시간의 잡동사니의 문화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귀여운 캐릭터와 팝아트

무라카미 타카시


 1962년 출생으로, 20세기 일본회화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팝아트를 주도하는 미술가 중에 하나입니다. 루이비통 디자이너, 만화가로도 유명하고요, 2008년에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위 안에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포스팅한 일본의 미술가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유명한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일본 팝아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분인데요, 무라카미 타카시 하면 떠오르는 것이 강렬한 색감과 만화 같은 그림체(그는 만화기이기도 합니다.), 팝아트와 오타쿠를 합성한 포쿠(POKU)를 만든 사람(참고로 보쿠는 일본어로 ''라는 뜻이지요)을 만든 사람 등 여러가지가 있지요.

          그의 수호신이라는 캐릭터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라 하면 보통 떠올리는 것은 눈이 큰 미소녀들이 나오는 것 들이거나, 드래곤볼 같이 배틀이 계속되는 만화가 떠오르지요, 이런 애니, 망가와 일본의 전통회화 그리고 팝아트까지 전혀 섞일 것 같지 않았던 이 세가지가 섞여 새로운 그만의 미술세계를 창조하였습니다. 이런 그의 독특한 표현기법 을 슈퍼플랫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그의 스타일은 만화에서나 나올듯한 평면적인 색과 이미지를 배열하는 것입니다. 오타쿠란 말 들어보셨죠? 원래는 이라는 뜻의 일본어로, 집에 틀어박혀서 외부의 세계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이들을 의미하지요. 이런 그들은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훌륭한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런 미시적인 세계들이 모자이크처럼 결합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라는 측면에서 그의 스타일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그의 피규어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타쿠의 상징과도 같은 피규어를 그는 작품으로 창조해 냈습니다. 위의 작품말고도 남자 캐릭터가 성기에서 정액을 분출하는 작품도 있는데요, 선정적이여서 짤랐습니다. :) 이 작품을 보시면 바로 이런 생각이 드실껍니다. “이런게 미술이야?” 놀랍게도 이 작품은 158억에 판매 되었지요. 물론, 가격이 미술 작품의 가치를 정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에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바로 일본의 오타쿠 문화를 극단적으로 표현해 낸 것입니다. 말도 안될 정도로 비대한 유방에서 모유를 쏟아내는 피규어 답지 않게 거대한 이 작품은 일본 오타쿠들의 욕망을 극단적으로 표현해 낸 것이지요.

이 작품은 동양화풍으로 건담을 그려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작업을 하신 분이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다른 점이라면 이 작품에서의 건담은 현대 오타쿠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캐릭터라는 것이지요. 전통과 현대의 캐릭터를 조합시켜 새로운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어색하면서도, 일본의 전통과 현대 미술의 연관성을 담아 놓은 이 작품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의 미술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데요,

이렇게 구글로고를 디자인한 적도 있고요.

또한 위의 루이비통 매장역시 무라카미 타카시의 작품이지요. 루이비통 디자이너로서도 그는 많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딱 봐도 그의 작품이라는 느낌이 오지 않나요? 저도 하나 가지고 싶네요 ㅋㅋ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전개해 나가는 무라카미 타카시의 미술 세계는 매우 다채롭고, 또한 매우 매력적입니다. 그의 더 많은 작품은 인터넷 곳곳에 있으니 쉽게 찾아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서양화의 관념을 깨부수다

후쿠다 미란

 

1963년대 출생해 20세기 일본회화를 주도하고 있는 후쿠다 미란은 다양한 미디어와 복제를 통해 아우라가 없는 작품이 범람하는 현대 미술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작가입니다. 또한 서양화의 기본적인 관념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 무너뜨리는 창의적인 그림들도 인상적이지요. 아래의 작품을 보세요.

 

<Portrait> (1997)

 이 기괴한 형태의 초상화는 실제로 전시회장 구석에, 양 면의 벽을 차지하며 설치되어 있습니다. 사실 초상화 자체는 그리 특이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서양 화풍의 초상화인데요, 특별한 점은 바로 이 초상화의 액자와 초상화 자체가 뒤틀어져 있는 것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그림은 이차원의 그림이 뒤틀어지며 삼차원의 이미지를 이루려 하고 있습니다. 이차원인 캔버스에 삼차원을 담는다는 생각은 피카소 이래로 계속된 도전과제였습니다. 피카소는 다른 시각을 연결하여서, 혹자는 캔버스를 칼로 그음으로써 삼차원을 창조하려 했는데요, 후쿠다 미란은 아예 캔버스를 접어서 삼차원을 창조한 것입니다. 정말 독창적인 생각이라고 느껴집니다.

혹은 삼차원을 창조하려고 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일종의 초상화는 이래야 한다는 관념에 도전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는 저번에 보셨을 나오후미의 작품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네요.

후쿠다 미란의 다른 작품으로는 다음 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Green Giant>(1989)

  가운데 그림이 익숙하지 않으세요? 바로 밀레의 작품인데요, 이를 현대의 대표적인 옥수수 통조림인 그린 자이언트를 꼴라쥬했네요. 점 점 커지는 그린 자이언트, 그리고 가운데서 조그만 공간만을 차지하고 있는 부부는 과거와는 달리 소비만 존재하는 현대사회를 풍자하는 듯 합니다. 또한 복제를 통해 작품을 만드는 현대 미술에 대한 질문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기 예수가 본 성모와 성 안나>(1992)

  이 작품역시 후쿠다 미란의 작품인데요, 아주 독특한 구도와 특이한 표현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존 서양화의 성화들은 모두 예수가 주인공입니다. 따라서 어느 구도를 취하던지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예수를 위치시키기 마련 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분명 성화이지만 예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왜냐? 내 시선이 예수의 시선과 일치하기 때문이죠. 나와 예수의 시선이 일치하기 때문에 나는 예수를 볼 수 없습니다. 예수의 입장에서 어머니와 친척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지요. , 이 그림은 감상자가 있어야 완성되는 그림인 것입니다.

후쿠다 미란은 이렇듯 창의적인 시도들로 기존의 서양화의 관념을 부수거나, 콜라쥬를 통해 현대 소비사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이 인상적이 신가요? 아쉽게도 그녀의 작품을 소개하는 블로그나 사이트가 없네요. 더 많은 작품을 보고 싶으시다면 구글에서 福田美蘭으로 구글링 하시는 것을 추천 드릴께요.

모호한 경계속에 펼쳐지는 그림,

마루야마 나오후미

 

1964년이자 무사시노 미술대의 교수인 마루야마 나오후미는 유기적인 형태의 추상화를 그리던 초기 작품에서 밝은 톤의 그림을 그리는 요즘의 작품까지, 모두 매력적입니다.

이 작가의 특징은 ‘선’이 모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이 존재하지 않고 흐릿한 상의 색의 변화가 그림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선은 사물과 배경, 사물과 사물을 구분시켜주는 요소지요. 사실 선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요.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감상하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선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나오후미의 작품은 안개가 낀 듯 흐릿하기만 합니다.

안개가 끼면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답답하고 갑갑하기 마련이지요. 한편으론 신비스럽기도 합니다. 나오후미의 그림은 이런 안개의 특성과도 같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무제(1995)

위 두 그림은 매우 인상적인 그녀의 인물화입니다. 인물화를 저렇게 뿌옇게 안개가 낀 듯한 그림으로도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 이였습니다. 기존의 반듯한 선으로 인물의 특징을 강조하던 그림과는 다르게, 밤안개가 내려앉은 짙은 보랏빛 호수 같은 이런 모호한 인물화도 인상적이더군요. 사실 인물화를 이렇게 그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인물화는 대상이 되는 인물의 특징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뿌연 그림을 그리기 쉽지 않지요. 마치 흐린 인물화를 통해 인물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듯 하네요.

이 작가는 캔버스에 두 번 이상 붓질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번의 붓질을 통해 긴장된 구성을 이룬다고 하네요. 물론, 심미적인 아름다움도 포기하지 않고 말이죠. 그의 작품은 그가 고른 모티프를 생생히 전달하고, 스타일은 정적이라기보다는 동적이랍니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추상과 표현하려는 물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그의 의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들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Path 3(2005)                          Day and Night(2005)

       

Butterfly Song(2005)                Puddle in the Wood 4(2010)

우리나라 웹에는 잘 나오지 않고 丸山直文라고 구글링을 해야 비로소 나오더군요.

그의 작품들은 모두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몽환적인 느낌을 주며, 동양화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동양화 특유의 여유와 느낌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세계를 함께 즐겨보시죠.

나오후미의 블로그: http://petapetahirahira.blog50.fc2.com/blog-entry-423.html


http://www.mangost.gr.jp/kobayashi/

코바야시 타카노부의 공식 사이트

http://www.nishimura-gallery.com/artists/kobayashi/kobayashi.html 

코바야시 타카노부의 여러 작품들

http://kobabkk.exblog.jp/

코바야시 타카노부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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