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론의 전개과정(4)

문학이론의 전개

모방론


 저번 포스팅까지 문학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이론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이번 포스팅부터는 문학의 이론의 전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문학이 어디서 왔는가? 에 대해서 살펴보았다면, 지금부터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를 살펴 보려는 것이지요.

원자론으로 유명하신 데미크리토스옹

 거의 대부분의 사상이 그렇듯, 문학이론 역시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가장 중요한 기능을 동물에게서 배운다. 예컨대 거미로부터 천짜는 법을, 백조와 밤꾀꼬리로부터는 모방의 방식에 기초한 노래를 배운다.” -데모크리토스

 이렇듯, 그의 생각은 명백했습니다. 예술은 곧 자연을 모방한 것이었지요. 그에게는 사람의 노래는 새의 노랫소리를 모방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방'은 그리스어로는 '마메시스'라고 하는데, 서양의 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됩니다. 

 데모크리토스의 '모방'은 그 전까지의 '모방'과는 다른 개념이었습니다. 모방(마메시스)의 어원인 '미무스'는 제사행위를 의미하는 단어였지요. 즉, 데모크리토스의 전의 모방이라는 개념은 단지 인간의 내면의 격렬한 감정을 밖으로 모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데모크리토스의 모방은 외면의 다양한 자연물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상이 변화하였지요.

서양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옹

 하지만, 이 시기 데모크리토스와는 다른 '모방'의 개념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서양 사상의 원조격 되시는 소크라테스 할아버지 되겠습니다. 데미크리토스의 모방론이 '자연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모방이라면, 소크라테스의 모방론은 '자연 사물에 대한 외관'에 대한 모방이지요. 

소크라테스는 미학적인 범주를 적어도 세 가지로 나누었다. 그 세 범주는 부분의 조립을 통해 자연을 표현하는 '이상적인 미', 시선을 통해 영혼을 표현하는 '정신적인 미', 그리고 '유용한(혹은 기능적인) 미'이다.

-강정인.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 문학과 지성사. 

소크라테스의 이런 사상은 그대로 그의 제자인 플라톤과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흘러 들어갑니다. 하지만, 위대한 두 철학자는 '모방'에서의 '본질'과 '현상'간의 관계에 대해 다른 의견을 보입니다. 

키 2미터에 레슬링과 복싱을 즐겨하고 성질은 불 같은 지상 최강의 학자, 플라톤옹

 플라톤은 사실 예술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래 텍스트를 보시면 아실 수 있을 거에요.

"만일 자신의 뛰어난 재주로 많은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모든 것들을 모방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의 도시로 와서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공연을 개최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가 성스럽고 놀라우며 달콤한 사람임에 정중하게 예를 표해야 하지만, 그에게 우리의 도시에는 그러한 사람이 없으며 그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 우리는 그의 머리에 몰약을 붓고 화관을 씌운 후, 다른 도시로 보내 버릴 것이다." 

-플라톤 <국가론> 국가편

 이렇게 플라톤이 예술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지닌 이유는 명백합니다. 플라톤의 가장 기본적인 사상은 '이데아론'입니다. 이데아는 시공을 초월하는 하나의 '개념'이지요.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이 이데아를 모방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술은 또다시 이데아를 모방하는 것들을 모방하지요. 

 원래 현실에 있는 것들에서 이데아를 끌어내기도 쉬운 작업이 아닌데, 거기다가 또 한번 모방을 가한다니, 플라톤에게는 예술이 사람들을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게다가 예술에는 주관이 들어가니, 진리에서는 삼천만광년쯤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결국 그는 자신의 이상국가에서 예술가들을 추방하고 맙니다.

하지만 다음 글을 보시죠. 똑같은 <국가론>의 이야기입니다.

"(시인이나 비극 작가인) 그들 중 몇몇이 우리에게 와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해보자.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의 나라로 들어가도 됩니까? 그리고 우리의 작품을 함께 가지고 가도 될까요? ...' 영감으로 충만한 이 천재들에게 할 수 있는 우리의 올바른 대답은 무엇일까? 내 생각엔, 다음과 같을 것이다. '... 우리의 나라 전체는 가장 훌륭하고 고귀한 삶을 모방하도록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동일한 장르를 짓는 당신들과 같은 시인입니다. ... 그러니 우리가 분별없이 당신들을 시장바닥의 무대에 올릴 것이라고 생각하여 달아나지 마십시오."

-플라톤 <국가론> 법률편

여전히 아주 우호적인 태도는 아니지만, 훨씬 개선되었지요. 들어오게는 해 준다니 말입니다. 이 예술가의 귀환에 대해 생각해보기 전에 먼저 <법률편>에 나오는 플라톤의 쾌락에 대한 관점을 알아야 합니다. 

 플라톤은  적절한 쾌락과 부적절한 쾌락, 그리고 단순한쾌락으로 쾌락을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합니다. 쾌락의 분류는 나이가 많고 지혜로운 사람이 해야 한다고 하지요.  적절한 쾌락과 단순한 쾌락은 예술이 즐거움뿐만 아니라 도시와 인간의 삶에 유용함까지도 제공하기 때문에, 플라톤은 예술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부적절한 쾌락이 있기 때문에 플라톤은 예술 작품에 대한 검열의 필요성 또한 역설합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들(매혹적인 뮤즈의 아들들)에게 전적인 자유를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의 연극을 엄정하게 검열할 것이며, 우리가 인정한 것만을 장려할 것이며 그렇지 못한 것은 금지할 것이다." 

-플라톤 <국가론> 법률편

 플라톤의 이러한 사상의 변화는 쾌락에 대한 그의 태도변화와 연결됩니다. 예술이 주는 쾌락이 질이 좋은 경우에는 부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전히 예술은 모방에 불과하며, 언제든지 검열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방'으로서의 예술을 보는 그의 시각은 건재합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게, 예술에 대해 긍정적으로 접근하려고 시도한 이는 다름아닌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였습니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모방론과, 효용론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시간의 잡동사니의 문화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문학이론의 전개과정(3)

문학이란 무엇일까?

문학의 기원; 제의적 기원설 


 저번 포스팅들에서 문학의 기원을 찾아 인간의 심리를 살펴보고, 사회적으로도 살펴보았습니다. 예술의 기원, 문학의 기원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저번의 두 포스팅과는 다른 관점의 재미있는 이론을 살펴보려 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것들도 다 과거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인데요. 문학역시 그렇지 않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지 않으신가요? 이런 맥락의 이론이 있으니, 바로 제의적 기원설, 다른 말로는 발라드 댄스론 입니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를 아시나요? 행렬로 축제를 시작하고 행렬이 끝난 후에는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합창과 비극, 희극을 공연하는 디오니소스 축제는 현대의 올림픽에 비길 만큼 성대하게 거행되었습니다. 여기서 수많은 작품들이 발표되었지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모두 이 축제에서 작품을 발표해 큰 호응을 얻은 작가들입니다. 

 제의적 기원설의 골자는 이렇게 문학의 기원을 고대의 종교적인 제의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무당을 생각하면 쉬우실 텐데요, 고대의 제의는  시와 춤과 노래가 한데 어우러진 원시적인 가무가 행해졌습니다. 굿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이런 원시적인 가무(발라드 댄스)에서 문학과 예술이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제의는 시, 춤, 노래 모두가 결합된 종합예술이었습니다.

 원래는 발라드댄스 처럼 미분화된 원시종합예술 형태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원시적인 가무 속에 들어 있던 언어는 문학으로 소리는 음악으로 몸짓은 무용으로 분화되었다는 것이지요. 원시 문학 형태의 발전 단계로서 처음에는 문자로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것을 "유동문학"이라 하고, 문자발명 이후 문자로 정착된 형태를 "정착문학"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로서는 거의 통설로 정착된 학설입니다.

龜何龜何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머리를 내놓아라

若不現也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구워서 먹으리 

-구지가 

 한번쯤은 보셨을 <구지가>입니다. 가야의 수로왕과 관련된 배경 설화가 있는 노래이지요. 이 노래를 보면 군신을 맞이하려는 실제적 목적과 가무를 즐기려는 심미성이 함께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발라드댄스는 실용성과 심미성이 동시에 작용하였다 할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축제였을 구지가가 현재는 정착문학이 되어있는 것도 흥미롭지요.

 지금까지 문학의 기원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세 이론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어떤 이론이 가장 문학의 기원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지, 직접 한번 생각을 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시간의 잡동사니의 문화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문학이론의 전개과정(2)

문학이란 무엇일까?

문학의 기원; 사회학적 기원설


 저번 포스팅에서는 문학의 기원에 대한 심리학적 기원설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모방본능설, 유희본능설, 흡인본능설이 있었는데요. 과연 예술이 개인적인 심리에 의해서만 창조될까요? 정철의 시 <훈민가>를 살펴 봅시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늙어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정철 <훈민가>

 이 시는 백성들의 교화를 위해 쓰인 것인데요, 개인적인 욕구로만 창작되었다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점이 느껴집니다. 개인적일라기 보다는 사회적인 필요해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나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인간의 심리대신에, 사회학적인 요인에 대해서 살펴보려 합니다.

 이런 사회학적 측면의 접근이 등장한 이유는, 예술이 심미적이고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제 생활과의 깊은 연관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사회적 결속과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발생한 것으로 의욕을 자극하고 사람들 사이의 협동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는 것이지요.

마술적효과를 지닌 미술

 히른, 그로세, 멕켄지 등의 학자들은 인류학, 고고학적 연구를 하던 중에 재밌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고대 인류의 유물 혹은 원시사회의 생활을 관찰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렐리아 토인, 나일강 뱃사공들의 노동요등이 노동의 효율을 늘리는데 사용되었으며, 그 외에도 예술이 정보를 전달하고, 의사소통을 하며, 흥분 등의 마술적효력을 통해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효용을 지닌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춤만 하더라도 모방이나, 내적 충동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사냥을 하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동작을 손쉽게 익히게 하려는 사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 입니다.

 그로세는 자신의 저작 <예술의 기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또 맥킨지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지요.

'예술작품의 대부분은 순수한 심미적 동기에서 이루어진것이 아니고 차라리 실제적 목적이 먼저있고, 심미적 요구가 다음에 생긴 것이다.'

-그로세<예술의 기원>

‘문학이란 그 본질에 있어서 사회적 현상이다’ 

-맥킨지<문학의 진화>

 요즘 현대에서는 예술이 이런 기능만을 수행한다고 보기엔 힘든데요, 그들 역시 이런 점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사실 모든 예술은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 실용적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졌지만,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이런 목적이 점차 옅어지고, 심미적이고 개성적인 측면들이 강조되었지요.


현대의 많은 축제는 사실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시작되었죠.


 이런 사회학적 기원설은 예술이 단순히 충동의 발현이라는 유희충동설에 대한 비판으로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 실용적으로 발생되었다는 사회학적 기원설역시 19세기 미국의 무용미학자이며 철학자인 랭거에 의해 비판되었습니다. 

 랭거는 언어의 본질은 어떠한 개념을 표시하는 것 보다는 목적없는 발음 본능, 원시적인 심미적반응으로 보았습니다. 즉, 전달기능에 앞선 심볼로서의 언어 자체의 발생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실용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주장을 완전히 반박하고 있는 것이지요. 


 '언어의 첫 발성은 어떤 욕구의 사인이 아니라,단지 기쁨의 부르짖는 소리에 지나지 않다' -랭거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시간의 잡동사니의 문화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문학이론의 전개과정(1)
문학이란 무엇일까? 
문학의 기원; 심리학적 기원설

 우리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 당연하게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학역시 그런 것들 중 하나입니다. 언제 부턴가 당연히 우리 곁에 있었기에, 문학이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질문을 들으면 말문이 막히는 것이 현실이지요. 그러나,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문학도 시작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런 '문학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문학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심리학적 기원설, 사회학적 기원설 그리고 제의적 기원설입니다. 일단, 이번 포스팅에서는 심리학적 기원설에 대해서만 알아 보겠습니다.

1. 모방본능설

 정말로 기분이 우울하거나, 슬플때 또는 기쁘거나 행복할 때 어떠한 형태로든 그 기분을 표현하고 싶으신 것을 느껴보시지 않으셨나요?  요즘 유행하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SNS역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기 위해서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는 다양한 SNS들

 인간이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것 역시 특별한 목적 때문이 아니라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적 욕구 때문이라는 것이 바로 심리학적 기원설의 골자입니다. 비단 문학 뿐만이 아닌 예술이 인간의 본능적인 창조를 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능적으로 창조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예술 충동이라고 하지요. 그러면 이 예술 충동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라스코 동굴벽화역시 동물의 모방이지요

 유치원에 다닐때 '참새 짹짹, 병아리 삐약삐약'이라고 해보신적 있으신가요? 이렇게 사람은 자연에 있는 것들을 모방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인해 예술충동이 생긴다는 것이 바로 모방본능설입니다. 인류 최초의 미술품, 라스코 동물벽화역시 가축들을 모방해 그린 것 이지요. 
 모방본능설은 다름아닌 서양 철학의 거목, 아리스토 텔레스가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어떤 두 개의 원인이 시를 낳는데, 그 어느 원인도 사람의 성정(性情)에서 흘러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제일의 원인은 사람의 모방성이다. 왜냐하면 모방한다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린애의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사람은 가장 모방적인 동물이며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사람은 가장 모방적인 동물이며 사람의 최초의 지식은 모방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그와 함께 사람은 모두 모방된 것에 기쁨을 느낀다는 것도 또한 사람의 본능이다. 이것이 제이의 원인이다.” -<시학>, 4장

 이 대목 외에도,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두 가지 본능 때문인데요, 하나는 '모방본능'이며, 다른 하나는 그 '모방본능'을 통해 기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미학이론은 독일의 쉴러가 유희본능설을 내놓기 전까지 미학의 중심사상으로 작용했습니다.

2. 유희본능설

 그런데, 우리가 하는 예술을 모두 모방이라고 생각하기에만은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트릴로지, <배트맨>시리즈를 봅시다. 물론, 모방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이 영화 전체가 모방으로 치부하기에는 무언가가 더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일부 동물들도 기초적인 수준의 모방은 가능하지 않나요?

 16세기 독일의 위대한 작가이자 문학이론가인 쉴러는 위와같이 전통적으로 예술은 모방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회의적인 질문을 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에게 내재된 '유희충동'으로 인해 예술이 발생한다는 유희 본능설을 내 놓게 됩니다.(사실 따지고 보면 칸트의 생각을 발전시킨 것이긴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충동-사태 충동과 형식 충동-이 있다. 앞의 것은 인간의 육체적 성질에서 일어나 외계에서부터 여러 인상을 받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뒤의 것은 인간의 자아의 활동에서 일어나 항상 휴식을 구한다. 이들은 상호 보족하면서 활동하는 것인데 이들의 상호 보족하면서 활동하는 것인데 일들의 상호 보족이 가장 조화가 잘 되었을 때 여기에 제3의 충동이 생긴다. 이 제3의 충동이 즉 유희 본능이다.”

 이러한 쉴러의 관점을 유희본능설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부터 유희 즉, 놀이를 즐기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동물은 생존과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거의 모든 힘을 쏟지만, 인간은 이들과 달리 본능을 충족시키고도 남은 힘과 지적 능력을 놀이를 즐기는데 쓰고, 이런 놀이들이 형식화 된 것이 바로 예술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론의 의의는 아리스 토텔레스로부터 출발한 이성적 문학관과 중세 기독교의 신비적, 도덕적 문학관을 청산하고 바로 ‘예술을 위한 예술’ 이론을 탄생시켰다는데 있습니다. '무엇을 모방한 예술' 또는 '신을 찬미하기 위한 예술'이 아닌, '예술 자체로, 즐기기 위한 예술'이 탄생한 순간인 것이지요.

3.흡인본능설

아이돌의 무대같은 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까요?

 그런데 아직도 모든 예술이 다 설명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이돌들의 무대를 보신적 있나요? 견해차는 있겠지만, 저는 이것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위의 두 이론들로 설명은 가능하지만, 완벽하게 설명하기는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모방이 들어가긴 하지만, 주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또한 유희충동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겠느냐도 의문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 답을 한 것은 놀랍게도 찰스 다윈이었습니다. 네, 그 진화론으로 유명한 양반이지요. 진화론을 만든 사람이 예술 이론에 껴들은 것이 이상하다고요? 아무튼 그는 예술이론에도 역시 자신의 진화론에 입각하여 접근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새는 치장하나?

 공작새의 이 아름다운 깃털들이 바로 암컷들을 '꼬시기'위해서 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래야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자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윗은 예술활동역시 이런 공작새의 깃털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남을 끌어들이려는 '흡인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람도 남에게 매력(관심)을 끌기 위해서 본능적인 심리현상으로서의 흡인 본능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다윈의 이런 주장은 예술이 어떻게 탄생하는가 자체에는 어느정도 의의를 가집니다만, 예술의 공리성, 효용성 측면을 설명해 주지 못해 많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시간의 잡동사니의 문화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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